제2차 모리 내각 개조내각 (중앙 성청 개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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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모리 내각 개조내각은 2000년 4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오부치 게이조의 뒤를 이어 모리 요시로가 총리로 지명되면서 출범했다. KSD 사건, 에히메마루호 침몰 사고, 외무성 기밀비 유용 사건 등 각종 논란과 낮은 지지율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2001년 3월 내각 불신임 결의가 부결되었음에도 모리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 조기 실시를 표명하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결국 4월 26일 총사퇴하며, 내각 불신임 부결 후 총사퇴까지의 최단 기록을 세웠다. 내각의 국무대신으로는 모리 요시로(내각총리대신), 고노 요헤이(외무대신), 미야자와 기이치(재무대신), 후쿠다 야스오(내각관방장관)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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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모리 내각 개조내각 (중앙 성청 개편 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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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모리 개조내각 정보 | |
내각 이름 | 제2차 모리 개조내각 |
일본어 | 제2次森改造内閣 |
후리가나 | だいにじもりかいぞうないかく |
대수 | 86 |
수상 이름 | 모리 요시로 |
성립 연도 | 2001년 |
성립 월일 | 1월 6일 |
종료 연도 | 2001년 |
종료 월일 | 4월 26일 |
여당 | 자유민주당 공명당 |
명단 | 내각 명단 (일본 총리대신 관저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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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각 성립 배경 및 주요 사건
2000년 4월,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모리 요시로가 후임 총리로 지명되었다. 모리 내각은 출범 초기부터 낮은 지지율과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2001년 2월 10일, 에히메마루호 침몰 사고 당시 모리 총리가 휴가 중 골프를 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초동 대응 미흡에 대한 비판이 쇄도했다. 이로 인해 여론 조사에서 지지율이 8%까지 떨어졌다.[2] 요미우리 신문은 KSD 중소기업 경영자 복지 사업단의 자금 제공 의혹(KSD 사건), 무라카미 마사쿠니 전 참의원 의장의 의원 사퇴, 외무성 기밀비 유용 문제, 에히메마루호 침몰 사고 대응 미흡, 골프 회원권 문제, 주가 하락 등이 지지율 급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3]
2001년 3월 5일 내각 불신임 결의가 부결되었으나, 3월 10일 모리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당겨 실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사실상 퇴진을 표명했다.[4] 결국 4월 26일, 모리 내각은 저조한 지지율 등을 이유로 총사퇴했다.[5][6]
2. 1. KSD 사건
KSD事件일본어는 중소기업 지원 단체인 KSD(中小企業経営者福祉事業団일본어)의 자금 제공 의혹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경제 재정 정책 담당 대신이었던 누카가 후쿠시로가 사임했다. KSD 사건은 정경유착 의혹을 불러일으키며 제2차 모리 내각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3. 내각 총사퇴
KSD 사건으로 경제 재정 정책 담당 대신 누카가 후쿠시로가 2001년 1월 23일에 사임하고, 후임으로 아소 타로가 취임했다.[1] 2001년 2월 10일 에히메마루호 침몰 사고 당시 휴가 중 골프를 치던 모리의 초동 대응 미흡에 비판이 쇄도했고, 여론 조사에서 지지율 8%, 비지지율 82%를 기록했다.[2] 요미우리 신문은 2001년 2월, "모리 내각 지지율 8.6%로 급락, 역대 2번째 최저치 / 요미우리 신문사 전국 여론 조사" 기사에서 《"KSD 중소기업 경영자 복지 사업단의 자금 제공 의혹", 무라카미 마사쿠니 전 참의원 의장의 의원 사퇴, 외무성의 기밀비 유용 문제, 수산 고등학교 실습선 침몰 사고 대응 미흡과 골프 회원권 문제, 주가 하락 등이 지지율 급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설했다.[3]
2001년 3월 5일 내각 불신임 결의 부결 후, 3월 10일 모리는 9월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 조기 실시를 표명하며 사실상 퇴진했고,[4] 4월 26일 내각 불신임 결의 부결 52일 만에 지지율 저조 등을 이유로 총사퇴했다. 이는 장기 집권 당수 임기 만료나 국정 선거 패배 외 최단 기록이다.[5][6]
4. 국무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남녀공동참여 담당)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방재 담당)
〈위기관리 담당〉
〈행정개혁 담당〉
〈신천년기 기념행사, 정보통신기술(IT) 담당〉
〈신천년기 기념행사, 정보통신기술(IT) 담당〉